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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송화강 2021-02-02 (화) 18:46 27일전 12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우리 시대의 명저 50] '풍류'에서 한국적 기독교의 길을 찾다
한국 종교 연구 기독교의 토착화 노력
종교의 공통분모 '삼태극'을 찾아내 "속죄의 상징 십자가는 우리와 안어울려"


한국일보 200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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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불교 종파들로 어지럽던 7세기, 화엄의 원효가 했다는 말 ‘규천위관’(窺天葦管ㆍ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본다)도 그가 교조신학ㆍ수입신학의 틀을 벗어날 수 있게 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형 교회의 세습제나 ‘노사모’와 정(情)의 정치를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전통과 영성의 특성으로 풀어 비판하면서 “그렇지만 문화란 타락 속에서 재생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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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지 120여 년이 흘렀다. 근대화와 보조를 맞춰가며 이 땅 방방곡곡의 밤하늘은 희고 붉은 불빛으로 물들어갔고, 복음 역시 전래의 무교와 유ㆍ불ㆍ도 삼교(三敎)와 대립하고 조화하며 한국인의 심성에 충실히 스며왔다.

그렇다면 이 히브리의 영적 씨앗이 한국인의 심성과 동아시아 문화의 토양에 어떻게 뿌리내렸고, 지금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이 질문은 선교적 관심때문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반추 위에서, 영적 주체의 응답으로서 절실하다. 그 물음에 답한 이가 “교회마다 십자가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태극’의 상징을 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도그마 너머의 신학자, 소금(素琴) 유동식(85)이다

1956년 그는 미국 감리교회의 장학금으로 보스턴 유학길에 오른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적 소외에 시달려온 34세의 만학도는 그곳에서 또 한 번 근원적인 소외감, 문화적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경전과 신학체계 전체가 서구 문화의 틀 안에서 형성됐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써만 성서적 진리를 이해할 수 있고 복음을 누릴 수 있다면, 기독 신학자와 신앙인에게 반만 년 한국의 종교문화는 단지 미망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신앙이란, 절대자 안에서 우리의 모든 소외감과 열등의식을 극복하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아닌가.(<종교와 예술의 뒤안길에서> 84쪽)

그 즈음 신학의 양식사(樣式史)적 연구, 즉 진리의 절대성과 병행하는 문화의 상대성을 해명한 독일 신학자 불트만(1884~1976)과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밝혀준 빛이었다. ‘진리를 담는 그릇’인 역사와 문화의 상대성 연구, 종교를 담아온 우리 민족 고유의 마음 틀을 찾아가는 그의 길이 열린 것이다.

60년대 초 그는 국내 기독교 ‘토착화 논쟁’을 선도하며 한국학 연구에 몰두한다. 절대자를 인식함으로써 인간을 인식하는 것이 종교라면, 기독교의 복음원리와 우리 고유의 영성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민족적 영성의 문학예술적 표현으로서의 ‘신화’와 그 영성의 종교의례적 표출로서의 ‘제례’에서 시작한 그의 한국 종교사 연구는 단군ㆍ주몽ㆍ혁거세 신화와 고대의 제천의례, 신라의 화랑도(풍월도), 최치원의 풍류도, 원효의 불교사상, 율곡의 유교사상, 수운의 동학사상으로 이어진다. 그 시절 집필한 <한국종교와 기독교>(1965),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 등의 저서는 한국 종교, 특히 무교에 대한 본격 연구서로서 지금도 거대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신학의 토대 위에서 한국 종교사상사 연구로 나아간 그가 ‘풍류 신학’이라는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개념을 정립한 것은 80년대 중반이다. 60년대 <삼국사기>에서 최치원 난랑비문의 한 구절-‘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는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을 읽은 이래 어슴푸레하게 감지되던 실체를 붙든 것이다. 그는 고대 종교문화를 형성한 한국인의 원초적 영성이 유ㆍ불ㆍ도의 외래 종교와 어울려 맺은 것이 화랑제도요, 풍류도라고 밝힌다.

“가무강신(歌舞降神)하여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됨으로써 소원을 성취한다는 구조”(<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48쪽)다. 화랑의 가무는 예술적 차원 너머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삼국유사>, 위 책에서 재인용)는 행위였고, “산수를 찾아 노니는 것 역시 자연의 정기를 호흡하고 그곳에 강림한 하늘의 영과 교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위 책 53쪽)었다.

화랑과 ‘풍류’에 대한 그의 사유는 의미의 깊이로 파고들어, ‘멋진 한 삶’의 사상으로 여물어간다. ‘멋’은 이상적 미의식이자, 초월적 자유, 원융무애한 조화다. ‘한’은 크디 큰 하나의 포월적 ‘한’이고, 사람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구체적 일상의 ‘삶’이다. 거기서 그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하나됨, 곧 ‘삼태극’의 형상을 발견한다.

화랑의 가무강신과 ‘멋진 한 삶’은 유교의 극기복례나 불교의 무아열반, 기독교의 ‘십자가와 부활’ 상징과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종교의식의 본질이자 종교적 진리의 공통 구조인 ‘자기부정’을 통한 초월적 세계, 절대자 인식이다. 훗날 그는 ‘멋’을 중시하는 우리 고유 영성의 심미적ㆍ미학적 특성을 돋워, ‘예술 신학’이라는 또 하나의 독창적 경지를 개척한다.

이 노학자가 대학 퇴임 후인 95년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마련한 <다산기념강좌>에서 교수 및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이다. 우리 민족 5,000년 종교사상사의 높은 봉우리들을 두루 꿰며 서양 정신사의 정수인 신학과 합류하는 물길을 연, 소금 신학사상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연치가 의심스러울 만치 강건했다. 그는 서양 복음이 십계명이라는 ‘율법적 계약관계’ 위에서 성립된 반면 우리 종교사상은 ‘절대자와 내가 땅 위에서 하나’라는 삼태극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며, 십자가의 상징(죄와 대속)이 과연 우리에게 어울리는지 반문했다. “요한복음에 이르기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들이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들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라고 했어요.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된다는 게 바로 삼태극의 원리죠. 신 앞에서의 죄의식을 일깨우는 십자가보다 삼태극의 상징이 우리 교회에는 더 어울려요.” 그가 성직자 안수를 받지않은 평신도 신학자였고, 교권(혹은 도그마)의 바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던 점도 저 우람하고도 자유로운 ‘영성의 성채’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청년 시절의 한학 스승이던 전주의 고득순 목사가 그에게 준 호가 ‘소석’(素石ㆍ<계시록>에 나오는, 새로운 이름이 적힌 흰 돌이라는 의미)이다. 지금의 호 ‘소금’(素琴ㆍ줄 없는 거문고)은 고희 어름에 스스로 바꾼 것이다. “소리 안 나는 거문고이니, 미욱하다는 의미죠.

무거운 ‘돌’을 내려놓으니 마음은 가볍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싶다는 꿈마저 놓을 수 없어 들고는 다니는 거문고요.” 지난 해 후학들이 <소금전집편찬위원회>를 결성해 성서신학-풍류신학-예술신학으로 이어지는 그의 신학사상사를 정리하려는 참인데, 그는 연전의 강연자료들을 정리해 내년쯤 또 책을 묶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교회의 삼태극 상징도 그 책에서 하고싶은 얘기입니다. 살아있음은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고, 젊고 늙음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력으로 나뉩니다.”





●유동식

1922년

황해 평산군 남천 출생. 춘천고 감리교신학대 졸업

48~56년 공주여사범ㆍ전주사범ㆍ배화여고 교사

56~72년 미 보스턴대, 스위스 에큐메니칼연구원, 일본 도쿄대ㆍ국학원대학 수학

59~67년 감리교신학대 교수

73~88년 연세대 신과대 교수

<한국종교와 기독교>(65) <민속종교와 한국문화>(77) <한국신학의 광맥>(82) <풍류신학으로의 여로>(88) <풍류도와 한국신학>(1992) 등 저.

76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98년 3ㆍ1문화상 학술상






한국이 죽어야 기독교가 산다? 기독교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는 외래 종교인 기독교와 토착적인 한국문화의 비극적 충돌을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증언한다. 한국문화가 서양에서 전해진 기독교를 버려야 한국적인 정신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혹은 기독교가 불필요한 불순물로서의 한국문화를 버려야 기독교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유동식 선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은 이러한 번역신학이나 수입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좋은 한국인이 될 때 좋은 기독교인도 될 수 있다는 토착화신학의 화두를 던진다. 한국문화의 뿌리를 망각하고 서양을 서투르게 모방만 하려는 종교나 신학은 마치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격'으로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생은 한국문화의 바탕을 풍류도로 본다. 민족의 얼로서의 풍류도는 유교ㆍ불교ㆍ도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마음의 틀이다. 즉 풍류도는 어떤 구체적인 고대 종교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 바탕과 얼을 구성하는 불변의 원리이며 보편적인 영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풍류도의 핵심에는 종교와 예술과 인생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한 멋진 삶'의 추구가 있다.

'한'은 크다는 뜻으로, 종교에서는 거기에 인격적 존칭을 붙여 한님 곧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종교들이 담이 없이, 더 나아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담이 없이 한 전체로 어우러진 삼매경을 신라의 석학 최치원은 포함삼교(包含三敎)라 불렀고, 이를 한국 기독교는 타 종교와의 대화를 추구하는 종교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멋'이란 단순히 자연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개입된 예술적 미를 뜻한다. 삶 자체를 예술로 보고 이러한 흥ㆍ자유ㆍ조화의 멋을 추구한 우리 민족의 예술문화를 최치원은 좁은 의미에서의 풍류(風流)라 불렀고, 이를 한국 기독교는 이른바 예술신학으로 계승하고 있다.

'삶'이란 살림살이의 뜻으로, 사람의 준말이다. 사람다운 삶, 사람다운 사람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족의 생명존중사상을 최치원은 접화군생(接化郡生)이라 불렀고, 이러한 생명살림의 요구를 한국 기독교는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신학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이 살아야 기독교가 살고, 기독교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고 선생은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서양 선교사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오신 분이 아니다. 그는 한울 우주를 창조하고 실현한 예술가이며, 우주 만물의 포월자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다. 이러한 풍류도의 '한 멋진 삶'의 하나님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실로 선생은 하나님이 보여준 바람의 길을 걸으며 땅에서 하늘을 산 나그네이다.

손호현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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