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문화로 다시찾는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역사 > 전문역사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문역사자료실

[역사왜곡] 마고문화로 다시찾는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역사

송화강 2021-02-02 (화) 18:38 22일전 14  

  마고김황 혜숙


 클레몬트 대학원 여성종교학 박사


마고문화 연구가


 이메일 연락처: magoculture@hanmail.net




(이 글은 2005년 2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우스베일로 한의대학이 주최한  제 8차 한사상 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보완한 글입니다.)




마고문화로 다시찾는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역사




        필자는 종교학자로서 마고문화와 한국의 역사, 또 동아시아의 상고사를 역사학이라는 학문적 틀에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 연구할 수 있었고, 또 여성학자로서 고대 한국역사가 마고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신화와 전승, 종교학적 관점에서 아래에서 설명할 마고문화의 역사를 하나의 가설로 제안합니다. 


        만일 <부도지符都志>가 1980년말에 다시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동시대의 한국인들은 마고할미의 이야기를 영영 잊었을 것입니다 (<부도지>, 도서출판 한문화 2002, c1986). 마고할미의 이야기를 영영 잊어버린다는 말은 중국 이전의 한국의 고대역사와 문화를 근원적으로 풀어낼 실마리를 영영 잃어버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한국인들의 고대역사와 문화를 영영 잃어버린다는 말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만들어온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를 영원한 진실로 믿어버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고할미의 전통을 영영 잃는다는 말은 또 한국인들인 우리들이 어떻게 중국인들과 일본인들과 다른 민족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잃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는 일은 한국인들에게만 비극적 사실이 될 뿐아니라, 인류 문화와 역사의 비극이 될것입니다.


        <부도지>는 인류의 창조, 동아시아 인종의 형성과 여명의 역사, 그리고 고조선 시기를 통해서 신라초기까지의 한국역사와 문화를 일관성있게 서술하는 대서사시입니다. <부도지>는 우리에게 한국 역사와 신화, 신학, 과학, 천문학, 종교, 사상, 정치 철학에 관한 고대 한국인들의 이해를 전해 줍니다. <부도지>가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이 말하는 그리스와 로마 이전의 유럽역사와 문화는 물론 중동과 이집트 등의 여신중심의 고대역사와 신화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연구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도지>는 유럽인들을 포함한 근대 인류가 거의 잃어벌릴뻔 했던 지식, 즉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새벽에 대한 고대 한국인들의 신화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보배라는 말입니다.


        1986년 <부도지>가 출판된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대다수 한국인들은 <부도지>의 가치는 물론이고 <부도지>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된 <한단고기桓檀古記>는, 여전히 학계의 학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재야학자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점점 더 그 이해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아래에서 <부도지>와 <한단고기>가 말하는 마고와 마고문화는 무엇이고, 또 마고문화는 한국의 상고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들어가는 말  


        한국역사가 마고문화의 탄생과 발전, 또 쇠퇴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아주 생소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조선왕조 초기까지만 해도 마고문화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켜 온 상고대 한국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초기까지 한국인 남녀가 모두 마고문화의 승계자요 전달자였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마고문화와 동아시아 역사의 창조자요 수호자였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은 물론 중세기를 살았던 중국인들, 일본인들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대략 15세기까지 동아시아 지성인들은 마고문화로 시작된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한국인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한국역사와 동아시아 고대사는 고대 중국의 팽창주의와 고대 일본의 식민주의 사상이 조작해 온 허구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중국 팽창주의적 이념이나 일본의 식민주의적 사상은 근대역사의 산물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고문화의 관점에서 고대중국과 고대일본의 신화와 역사를 연구를 시작한 결과, 중국과 일본의 민족국가의 형성 자체가 고대 한국의 마고문화와 역사에 대한 침략과 왜곡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역사, 영토, 문화에 대한 패권 싸움은 결코 근세기의 문제가 아니요, 중세기의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중국, 일본이라는 민족국가의 형성 그 자체가 마고문화의 정통적 승계자요 수호자인 한국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부인하고 축소하고 강탈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필자는 중국과 일본의 민족적 관점은 바로 한국의 마고문화와 역사에 대한 말살, 축소, 왜곡, 그리고 강탈을 전제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의 고대신화와 역사를 연구하면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아홉 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서 떨어뜨린 요임금의 사수 이에 관한 중국신화는 고대 중국의 정치권력이 9국으로 구성된 두 번째의 마고연합국인 단국의 통치권에 대한 도발이자 찬탈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 신공황후의 일본신화는 신라인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고대 일본왕들이 어떻게 신라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훗날 더 구체적인 연구를 발표하겠습니다.) 만일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의 민족국가 형성의 시기부터 시도되었던 한국의 마고문화와 역사에 대한 말살, 축소, 왜곡, 강탈의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한국인들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반증노력은 부분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한국인들이 마고문화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일은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왜곡을 뿌리채 뽑아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동시대의 한국역사 말살과 왜곡에 대한 책임은 중국과 일본인들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이 교과서를 통해서 배워온 역사, 즉 세계에 알려진 한국역사와 동아시아 역사는 고려말 조선초 한국의 남성 정치인들과 남성 지성인들이 중국적 팽창주의와 일본적 식민주의 사상에 굴복한 결과로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고려말 일부 남성 지성인들이 중국 사대사상에 스스로 굴복한 나머지 마고문화와 한국 상고사를 절단하고 축소하였고(김부식, 일연 등), 조선왕조의 대다수의 남성 위정자들은 중국 사대사상을 명분으로 내세워 한국 상고사와 마고문화에 관한 서적을 스스로 파괴, 소멸시켰습니다(세조와 성종, 예종때 내려진 한국 고대사와 문화에 관한 서적 수거령). 고려말 조선초 한국 남성 지성인들과 위정자들의 권력과 정치력 찬탈은 중국인들이 말하는 역사--마고문화와 한국 상고사 말살의 역사--를 공인하는 가운데 이루어졌고, 이것은 바로 한국에서 여성억압의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한국여성들의 수난 역사는 일 만년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사실 그리 뿌리가 깊지 않습니다.) 근대 조선왕조 후기 이래로 한국인 남녀 모두는 상고대로부터 내려 온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잃고서도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고麻姑와 마고문화Magoism


        마고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자료에서 나타나는 동아시아의 대여신의 이름이고, 마고문화Magoism는 마고 대여신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명, 역사, 사회, 종교, 사상 전체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고대 전통을 지칭합니다. 한국어로 할미라는 단어는 대여신과 선조로서의 할머니 둘 다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 이래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하게 타락하면서 대여신이라는 뜻이 할미라는 단어에서 분리되기 시작하고, 그 결과 할미라는 단어는 천한 노파를 지칭하는 의미로만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전승에서 “할미”라는 단어가 여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대여신 마고를 찾아서: 상고대에 기원을 둔 동아시아 여성중심적 전통 마고문화에 관한 신화적, 역사적, 신학적 재구성> 8장 참고. Hye Sook Hwang, Seeking Mago, the Great Goddess: A Mytho-Historic-Thealogical Reconstruction of Magoism, an Archaically Originated Gynocentric Tradition of East Asia, Ph.D. dissertation,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2005).


        한국, 중국, 일본에 즐비한 마고와 마고문화의 연구자료 가운데 필자는 <부도지>와 <한단고기>를 두 개의 중요한 마고문화의 주요경전으로 꼽습니다. <부도지>와 <한단고기>에 관한 사료적 가치의 논쟁은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마고문화의 자료는 공식 역사와 신화기록에서 일찍이 제거되었거나 조작되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대부분 신화, 전승, 지명, 민간소설, 종교적, 역사적 기록의 부스러기 등입니다. 마고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마고할미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215개가 넘는 마고할미에 관한 설화와 지명을 수집했습니다. 그 외에도 마고에 관한 기록은 17세기, 18세기의 시, 그림, 소설, 기타 문헌들에도 즐비하게 나타납니다. 동시대의 한국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마고할미의 이야기 안에 우리 조상들이 후손 대대로 전해주고자 했던 인류의 기원과 초기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수집한 자료 가운데 한국의 마고문화 자료는 양적으로 우월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자료와는 달리 마고를 창조자, 원조상, 그리고 주권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대 한국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인 절대권위가 마고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물론 전체 인류가 마고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고문화를 연구하게 되면 한국인들의 마고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됩니다. 필자는 마고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신성을 대여신적 신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중국의 마고자료도 방대하며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여신으로서의 마고에 대한 신앙과 전통은 중국문헌에서는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훗날 도교가 형성되자 도교의 전통으로 흡수됩니다. 도교전통에서 마고는 서왕모를 모시는 하위여신으로 묘사됩니다. 필자가 수집한 일본 자료는 소량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마고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 자세한 마고문화 자료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부도지>와 <한단고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부도지>는 5세기 초 신라 영웅 박제상에 의해서 쓰여지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간직해온 문헌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부도지>가 박제상과 5세기 초부터 일연이 <삼국유사>를 썼던 13세기 말까지 적어도 800년 이상을 삼체신모三體神母로 숭상되었던 박제상의 부인 김씨와 그 두 딸에 의해서 공동으로 쓰여졌거나 아니면, 후자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추정합니다. 아무튼 원저자가 누구였거나 간에 <부도지>는 초기 신라인들의 마고문화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도지>에는 마고의 창조신화, 마고성의 낙원 이야기, 제 민족이 마고성을 떠나서 세계의 전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 이야기, 황궁의 지휘로 시작되는 동아시아인들의 역사와 문명, 그 이후 유인과 한인, 한웅, 임검(단군왕검)의 지도하에 형성된 한국의 상고대사, 그리고 신라로 이어지는 고대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필자의 <부도지> <한단고기>의 해석이 다른 주석가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마고삼신에게서 비롯되는 상고대 한국의 사제 통치자 영웅들을 여성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필자는 황궁, 유인, 한웅, 단군을 모두 여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할머니들이요 또 할머니는 위대한 여신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한국의 영웅들을 여성이라는 보는 근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마고문화의 승계제도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마고문화적 고대 한국(마고연합제국)의 통치권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넘어가는 모계세습이라기 보다는, 왕가의 여성들 가운데 능력있었던 자가 통치권을 승계했다고 봅니다. 마고연합제국의 통치권 승계제도는 어머니 여왕이 맏딸에게 물려주는 장자승계제도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가부장적 왕권승계에 대칭되는 “가모장적” 제도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아직 더 연구되어야 하지만, 마고제국의 승계제도는 놀랍게도 현대 “민주주의”를 능가하는 “민주적”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의 마고문화 통치자들은 마고삼신 왕가의 후손 여성들로서 백성들이 인정하는 신성한 능력에 따라서 통치자의 자리에 임명되었다고 보여집니다. 화백제도의 원로들은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후대 통치자를 결정했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서, <한단고기>의 모든 기록이 단군이 웅씨왕의 아들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군은 백성들이 인정하는 신적인 능력으로 인해서 웅씨의 왕에게 비왕(지금의 부통령이나 국무총리)이라는 직책을 임명받습니다. 훗날 웅씨의 왕이 전사하자 단군은 최고 통치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부도지>가 말하는 한국인들의 사명은 복본復本이라는 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즉, 고대 한국인들은 전 세계의 민족들에게 마고의 근본으로 돌아오라는 소식을 전파하였던 사람들입니다. 평화와 만민 친족주의 (혹은 초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마고문화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학문과 더불어 타민족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부도라는 뜻은 단군이 동아시아에 세운 마고의 대제국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도는 고조선의 다른 표현입니다. 마고의 낙원, 즉 마고성의 삶을 동아시아에 구현했던 다민족주의, 다인종주의 국가가 바로 부도입니다. 초기 신라인들은 부도인들(고조선인들)의 사명을 승계한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나라를 소부도 즉, 작은 부도라고 불렀습니다.


        <한단고기>는 “마고”를 “삼신三神,” “대조신大祖神,” “천신天神” 또는 “천”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도지>와 무관한 책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단고기>에서 말하는 삼신, 대조신, 천신, 천 등으로 불리는 신이 <부도지>의 마고와 동일하다는 사실은 조금 연구를 하면 명백해 집니다. 가장 명백한 근거는 <한단고기>가 <부도지>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사회는 신정국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단고기>도 지고의 신으로부터 시작된 한인(한국)-한웅(단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단고기>의 첫 기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한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든데 한 신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        추고 큰 교화를 낳았다...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 백산의땅에         내려왔는데 ... 이른 한국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이라고 불렀다.         (<한단고기> 이하 임승국 번역, 삼성기 상편, 15).




위의 인용문은 <부도지>의 첫 아홉 장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위 인용문을 포함한 <한단고기>의 신화적, 신학적 서술이 어떻게 <부도지>의 마고의 창조기록과 부합하는지에 관한 설명은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한단고기>만 마고를 삼신, 대조신, 천신, 천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중국의 마고문화 자료를 보면 “마고”가 종종 “천”과 동일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 중국 대륙의 사천성 청성산 정상에 있는 연못은 마 고지麻姑池 (마고의 연못)라고 부르는데, 마고지는 또 달리 천지(하늘의 연못)라고 합니다 (필자의 논문, 385). 천지가 마고지의 다른 이름이라는 이 자료에 근거하면, 백두산의 천지도 원래는 마고지라고 불리웠을 것이고 또 과거에는 마고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태백산의 천제단도 마찬가지로 마고삼신에게 제사지낸 신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고대통치자들이 제사한 천신이 바로 마고삼신이라는 말입니다.


       


마고문화의 역사와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 민족국가들


        <부도지>와 <한단고기>에 의하면, 고대 한국인들은 마고문화의 창조자요, 전달자요, 또 수호자였습니다. 한국인들을 마고문화의 주역이라고 말할 때 주의할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마고문화의 주역으로서의 고대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정의되는 한국인들과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마고문화의 주역인 한국인들은 고대한국이 “한국인들”만을 위한 나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모든 민족이 마고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나라, 바로 이것이 마고문화가 말하는 고대한국입니다. 마고를 통한 만민 친족주의, 초민족주의 이상을 내걸었던 사람들이 고대 한국인들이라는 말입니다.


        필자는 마고문화의 역사를 6개의 시대로 구분합니다.


1. 신화시대: 마고삼신, 황궁, 유인이 인도한 여명기


2. 상고대: 한국(7199-3898 BC)과 단국 (3898-2333 BC)


3. 부도시대: 부도조선 (2333-232 BC)


4. 후부도시대: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 발해를 포함하는 고대국가 시대와 고려왕조(918-1392)


5. 암흑시대: 조선왕조(1392-1919)


6. 재부활기: 1986년 이후  


위에서 보듯이 마고문화와 한국역사는 불가분의 하나의 실체입니다. 마고문화가 한국역사를 창조해냈고, 한국역사는 마고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공간적으로 마고문화가 펼쳐졌던 무대는 시베리아를 포함해서 지금 중국의 땅이라고 불리는 동아시아 대륙입니다. 이 시간에는 시간 관계상 첫 세 시기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한단고기>는 지상의 첫 국가를 한국桓國이라고 부릅니다. <한단고기>가 12국 연방제 국가였던 한국(7199?-3898 BC)을 시초로 한국인 조상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반면, <부도지>는 마고로 시작되는 한국인들의 역사를 들려 줍니다. <부도지>는 한국인들이 세운 상고대 신정국들이 모두 마고의 두 딸 궁희와 소희 즉, 마고삼신의 계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궁희의 후손인 황궁은 마침내 마고성을 떠나서 북쪽으로 분거합니다. 곧 천산에 닿았고 (지도 1), 황궁의 후손들은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이동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전체로 이동했다고 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설명하겠습니다.) 필자는 한국 이전의 마고 삼신, 황궁, 유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단고기>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화시대의 역사라고 해 둡니다.


        신화시대 이후로 마고문화는 동아시아에 세 번의 연방국가 시대를 열게 됩니다. 첫 나라는 12국 연방제로서 한국이라고 불리고, 두 번째 나라는 9국 연방제로서 단국(3898-2333 BC)이라고 불리고, 세 번째는 3국 연방제로서 조선(2333-232 BC)이라고 불립니다. 대부분의 <한단고기> 해석자들이 두 번째의 나라를 배달국으로 부르고 있지만, 필자는 배달국이 아니라 단국檀國이라고 부릅니다. 잠깐, 왜 마고문화의 두 번째 나라를 단국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한단고기> 연구가들이 마고의 나라 한국의 두 번째 연방국을 단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무의식적이겠지만, 단국이라는 나라가 여성중심의 신정국이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단고기>는 단국은 웅족의 여성들이 이끄는 나라라고 밝히고 있고 또 단국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단고기>를 인용하면, “웅족 가운데 단국이 있어 가장 강성했다”라고 합니다 (<한단고기> 157). 그런데 흥미롭게도 번역자 임승국님은 여기서 사용된 웅족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웅녀를 의미하는 에서 통상 “사내”로 이해되는 雄자로 오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熊族之中檀國最盛라고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임승국님의 “무의식적” 실수는 웅족의 왕녀들이 세운 나라 단국이 동아시아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되었던 9국 연방제의 연방통치권을 가진 나라였다는 사실을 그가 인정하기 어려웠음을 시사합니다. 필자는 熊族之中檀國最盛라는 원문에 근거해서 웅족이 세운 단국이 두 번째로 오래된 동아시아 연방국의 통치권을 지녔다고 간주합니다.  


        두 번째 나라를 단국이라고 부르게 되면, 자연히 한웅이라는 영웅이 바로 웅녀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한단고기> 해석가들이 웅녀를 한웅의 배우자로 보는데, 마고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가부장적인 시각에 의해서 생기는 의미상의 오해입니다. 한웅뿐 아니라 한인과 단군 모두 여황제입니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고대 한국의 여황제 전통은 신라초기까지 이어졌다가 선덕, 진덕 여황제때 되살아나지만 종국에는 한국역사에서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우리가 단군신화라고 부르는 이야기에 나오는 곰의 여인(웅족의 왕녀)이 세운 나라가 바로 단국입니다. <한단고기>를 면밀하게 읽어보신 분들은 <한단고기> 저자들이 고대한국의 역사에서 웅족, 즉 단국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시조 복희, 신농, 황제 등이 모두 웅씨의 직손이나 방계후손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곰웅 자가 들어간 지명, 왕이름 등이 즐비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다른 기회에 밝히겠습니다. 단국이 마고삼신의 적통 웅녀의 왕가 여성들이 세운 나라라고 풀이하고 나면, 우리는 <한단고기>가 어떻게 중국왕조가 마고삼신의 적통 웅녀의 후손들에게서 파생된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지류국이라고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시조들은 웅족의 후예들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곧 단국의 연방 통치권을 배반하여 스스로 패권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표 1).


        두 번째 나라를 배달국이 아니라, 단국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한단고기>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책은 고대 한국의 역사를 “한”과 “단”의 역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단군이라는 이름도 단국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왜 두 번째의 나라를 단국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더 분명해 집니다.


        <한단고기>는 한국이 12국 연방제였고, 단국은 9국 연방제였다고 전합니다. 한국이 12국 연방제였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은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단국이 9국 연방국이었다는 사실을 부연하고자 합니다. <한단고기>의 해석가 이일봉님은 중국의 자료 안에서 나타난 9국 연방제 단국(배달국)을 설명합니다. 그 중 <산해경>을 인용하면서 고대 중국인들이 두 번째로 오래된 한국인들의 나라를 구미호로 비유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도표 2). 즉, 여우의 아홉 꼬리는 단국의 9국을 의미하고 여우 자신은 단국의 연방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이일봉님은 더 나아가서 중국전승에서도 구미호가 여성 통치력의 상징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일봉 <실증한단고기> 131-6). 구미호가 단국의 신성한 여성통치력을 상징했음은 도교의 대여신으로 알려진 서왕모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표 3).


        우리는 한국의 전설 속에서 종종 사악한 여성을 구미호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일봉님은 한국 전설에서 구미호가 사악한 여성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일봉님이 지적하는 구미호에 관한 중국자료는 한국의 구미호의 전설에 담긴 진실을 밝혀줍니다. 비범한 여성과 관련되는 구미호의 전설이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다는 말은 구미호가 동아시아의 오랫 옛날부터 단국의 여성권력을 의미하는 상징이었음을 뒷받침해 줍니다. 구미호가 사악한 여성으로 비유된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인식되었던 여성들의 통치권이 어느 시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부장적 정치권력에 도전을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사악한 여성의 대명사가 된 구미호의 전설은 실제로 여성적 통치권이 가부장적 정치권력의 강력한 반대세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강원도의 서구할미(마고할미의 다른 이름) 전설에서도 서구할미는 구미호의 화신으로서 공동체를 해치는 악마로 묘사되고 결국 효자로 존경받은 조선 후기의 지방선비들에게 구타당하여 살해당합니다.


        재미있게도 단국의 9국 연방제의 역사는 중국의 성웅으로 알려진 요황제의 신화에서도 나옵니다. 요는 단국의 말기에 중국대륙에서 정치적 권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요의 명사수인 이가 10개의 태양중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었다는 신화는 더 이상 무의미한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표 4). 기원전 3세기 중국귀족의 무덤에서 발굴된 이 그림은 요의 정권이 단국의 9국을 타도했던 역사적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왕조의 정체성은 단국의 9국 연방제를 타도했던 반反마고삼신적 정권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사실 이 신화는 지금까지 중국인들의 창조신화처럼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마고문화의 문맥에서는 요가 단국의 9국을 공격하여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다는 중국 왕조의 정치적 정체성과 또한 역사적 사실성을 드러내줍니다. 요의 사수 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중국 작품을 보면, 위쪽 중앙에 있는 열 번째 태양 속에 까마귀가 하나가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유적에서 나타나는 삼족오(서길수님은 세발봉황이라고 함)의 그림(도표 5)을 참고하면, 요의 사수 이가 쏘아 떨어뜨린 9개의 태양의 그림, 즉 가운데 태양 속에 있는 한 마리의 까마귀와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기원전 3세기 이전에 고대한국인들은 세발봉황을 마고삼신의 상징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앞서서 중국자료에서는 대여신으로서의 마고삼신의 역사나 신화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창조하고 수호해 온 마고삼신의 창조신화와 고대 한국과 단국의 역사를 부인합니다. 중국인들의 마고삼신과 한국과 단국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은 세발봉황이 까마귀로 변하는 이 신화의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도표 7)과 (도표 8)은 고구려 시대의 평양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입니다. 여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세발봉황은 고대 한국인들이 사용한 마고삼신의 문양으로서 마고삼신의 기원을 상징합니다. 참고로 덧붙이면, 삼신 혹은 삼위일체에 대한 의미와 상징들은 <부도지>의 창조신화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한단고기>에서 말하는 삼신일체사상도 마고삼신 사상의 철학적인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황제때 황룡사에 9층탑을 세웠는데, 아홉 개의 층이 신라의 이웃 아홉나라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래서부터 일본日本, 중화中華, 오월吳越, 탁라托羅, 응유鷹遊, 말갈靺鞨, 단국丹國, 여적女狄, 예맥穢貊 등 아홉나라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신라가 제시한 이 아홉나라는 7세기 중엽의 동아시아의 정세를 연구하는데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적 입장에서 동아시아 고대역사를 연구하여 중국인들이 기록한 역사의 시비를 가려야 합니다.) 필자는 선덕황제가 7세기 중엽 신라의 왕좌에 등극하게 되는 사건은 신라정부가 마고문화의 재부흥에 박차를 가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으로 봅니다. 단순히 아들이 없어서 딸을 등극시킨 것이라기보다, 한국 고대사의 찬란한 여성 통치자들로 승계되었던 마고제국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서 여황제를 등극시킵니다. 7세기의 동아시아 대륙에는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넘어서 다시 마고문화의 정치적 전통이 부흥합니다. 즉 중국역사의 유일한 여황제가 당나라 왕조를 비정통성을 지적하면서 스스로 왕조를 창립하는 사건이 생기는데, 이 여황제는 선덕황제와 진덕황제의 동시대인입니다. (7세기에 일어났던 마고문화의 재부흥에 관해서 황혜숙 논문 7장과 11장 참고). 신라사람들이 선덕황제에게만 유일하게 성조황고聖祖皇姑, 즉 성스러운 조상 황제 여신이라는 칭호를 주었던 사실도 그녀가 마고문화의 재부흥을 시도했던 영웅이었음을 시사합니다.


        필자는 선덕황제때 지어진 황룡사의 9층탑은 단국의 9국 연방제를 재부활시키는 선덕황제의 정책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라는 동아시아 제국들을 마고삼신에게서 비롯된 궁극적으로는 친족 왕조들로 보고 있으며 제국들의 연합체제를 주창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삼국유사>가 황룡사의 9층탑이 신라의 세 개의 보물 가운데 하나라고 쓰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선덕여황제가 마고문화를 재부흥시킴으로써 동아시아에 9국 연방제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정책의 중대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덕황제는 여황제라는 이유로 대외적으로는 당나라 태종의 비난과, 대내적으로는 화백회의 의장인 비담의 봉기를 감수해야 했는데, 그 여파로 곧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라정부의 마고문화의 재부흥 정책은 다시 진덕여황제를 등극시키게 됩니다. 아무튼 단국의 역사는 한국과 중국의 신화와 종교적 역사적 문헌에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단군신화를 통해서 알려진 웅녀의 이야기는 마고문화의 문맥하에서는 웅녀신화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한단고기>는 웅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 이면의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즉 웅녀의 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아니라 실제로는 단국의 건국신화입니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한국말기에 호족이 일어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건이 생기는데, 웅족의 여성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족이 사는 곳으로 이주해와서 호족과 평화적으로 대결하고 그 결과 호족이 일으키는 혼란을 슬기롭게 평정합니다. <한단고기>는 호족을 잔인한 약탈자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웅족과의 대결에서 진 결과 사해 밖으로 쫓겨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호족은 마고문화의 여성중심적 통치권에 처음으로 반발한 가부장 세력이라고 봅니다. 웅족의 여성통치자들은 마고문화의 관습과 신앙에 의거하여 호족을 평정한 것으로 보이며, 호족을 마고문화의 첫 법률인 무여율법에 기준하여 처벌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웅에 의해서 선포된 무여율법이란 고대 한국의 마고문화 통치권을 대변하는 최초의 종교적 법률입니다 (부도지 11장 49). 결과적으로 호족의 반란은 웅족의 여성들이 연방체제를 공고히 다져서 단국이라는 연합정부를 세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단국은 그 이후에도 난립하는 가부장세력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됩니다. 단국의 중기와 말기에 형성된 가부장세력들은 호족과 비교할 수 없이 강성해져서 결국은 마고문화의 통치권을 위협하는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복희, 신농, 황제로 대표되는 중국왕조입니다. 마고문화의 문맥에서 중국왕조의 시조들은 한국의 마고문화 통치권에 대항하여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가부장들을 지칭합니다. 


        기원전 2500년 경이 되면 소위 중국의 성웅이라고 불리는 요황제가 정치적 패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부도지>는 요를 처음에 부도의 회의에 가담했다가 곧 부도를 배신하고 자신의 정권을 세운 불한당으로 묘사합니다. 놀랍게도 <장자>의 저자는 요황제가 마고제국(부도조선을 말함)의 통치자의 먼지보다 못하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실수로 <장자>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자>가 쓰여질 기원전 5-4세기 경에는 단국과 부도조선에 대한 역사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과 민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이전입니다. 그러나 중국왕조가 대륙에 패권을 넓혀가면서 마고제국의 역사는 제거되고 왜곡됩니다). 


        잠깐 고대한국의 마고문화의 연합정치제와 중국의 가부장적 왕권정치제를 비교해 봅시다. 이일봉님은 <중국고대신화>를 인용하면서, 고대한국의 연합정치를 9개의 우물에 비유합니다 (이일봉, 86). 즉 하나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면 다른 9개의 우물도 출렁인다는 것입니다. 즉, 9국 연방제를 이루었던 단국은 이런 식으로 단합하여 마고문화의 통치권을 수호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고대 한국의 연합국가들이 마고제국의 통치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단국의 여성통치자들을 중심으로 단합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요황제로 시작되는 중국왕조는 새로 자라난 반란세력이었고, 요의 왕조가 단국 연합국가의 어느 지역이라도 침략하게 되면 다른 8개국이 도와서 이 침략을 물리쳤다는 말입니다. 필자는 고대한국의 제국들이 이런 식으로 중국의 무력정권에 대항해서 동아시아의 평화적 문명을 수호하고 발전시켰다고 봅니다. 그러나 부도조선의 연합정치체제가 중국의 첫 왕조 하나라에 의해서 무너지면서 삼한은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한국의 고대국가들은 하나의 연합정부를 형성하는데 큰 어려움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남북이 갈린 지금까지도 역력히 전해지는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고대와 중세기의 한국인들은 중국왕조의 침략 앞에서도 끝까지 마고문화의 연합정부적 통치권 안에서 단합하려는 노력을 시도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대 조선왕조 중기부터 한국문화도 급격하게 가부장문화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세조 이래로 한국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정책적으로 말살되고, 한국은 중국 사상과 문화를 역수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거의 일 만년 전통으로 살아 숨쉬어 온 마고문화가 조선왕조의 정책으로 뿌리뽑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고문화는 임진왜란때까지도 한국인들에게 강력한 민속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치악산의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은 마고삼신의 화상을 그리게 해서 산 정상의 바위 위에 놓고 일본인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필자는 마고할미의 신앙이 남북한 전체에서 197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다는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고의 제사장들이 통치권을 겸했던 고대한국, 즉 마고제국의 연합정치제도는 복본의 사명, 즉 마고의 근본으로 돌아오라는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민 친족주의, 초민족주의 사상을 내걸었던 마고문화의 통치자들은 전통적으로 마고문화의 사신들을 타민족에게 파견하여 기술과 문명과 함께 복본의 정신을 구현했습니다.


        <부도지>의 의하면, 요로 시작되는 중국의 가부장적 왕권정치는 한 남성이 스스로를 왕으로 임명하고 무력으로 국민들을 제압하고 군사적으로 타민족을 정복했으며 결국 동아시아 대륙에 불행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부도지>는 요의 왕권수립을 역사상 두 번째의 대재앙이라고 지탄합니다. 첫 번째는 마고의 낙원을 위기에 빠뜨린 지소의 사람들이 불러온 재앙이었고, 두 번째는 마고문화의 민족들을 사방으로 흩뜨러뜨린 요의 패권탈취라고 말합니다. 10장을 할애하여 요의 정권에서 비롯되는 중국의 가부장 왕권정치를 비판하는 <부도지>는 실로 고대 마고문화적 여성주의 비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도지) 17-26장).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도지>의 요의 가부장적 왕권정치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더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요는 군사를 일으켜 부도를 공격하기 시작하지만, 곧 부도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제압됩니다. 요의 승계자 순의 정권도 이런 식으로 진압됩니다. 그러나 순의 승계자 우는 왕권을 강화하여 결국 중국의 첫 왕조 하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하왕조는 부도의 연합국 간의 교류를 방해하여 부도의 연방제도를 점차적으로 마비시킵니다. “분열시키고 정복하라”는 구호는 중국인들의 마고문화 연방제의 타도작전을 잘 설명합니다. 결국 부도조선은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중국의 세력에 의해서 무너지고 맙니다. 기원전 3세기 경 부도조선의 연방체제가 무너지자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하기 시작합니다. 이 기회를 타서 무력 팽창주의적 정권인 중국인들은 진시황제때 처음으로 동아시아 정복국가의 틀을 다지게 됩니다.  


     


한국인이 창조하고 수호해 온 중국문명 이전의 마고문명       


        지금까지 마고문화의 고대 한국역사가 중국 이전의 역사라는 점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마고문화의 한국역사와 문명은 중국의 가부장 문명에 비해서 하급한 것이었나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마고문화의 관점에서는 역사와 문명이 부도조선 해체 이후로 급격하게 퇴화하고, 사람들은 영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합의 자리에 분열의 이념이, 또 공존과 연대의 자리에 정복과 지배의 논리가 대체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지성도 둔탁해지고 타락합니다. 예를 들어서, 고대에 쓰인 한자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그 용도가 다양합니다. 고대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보다 더 유동적이고 표현력이 다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사상은 유기적이고 또 종합적입니다. 분리적이고 미시적인 현대인들의 사고는 신화와 역사의 관련성을 보지 못하고, 수학과 정치학을 완전히 별개의 학문으로 이해 합니다. 그러나 고대 마고문화의 담론은 음악과 수학, 달력, 천문학, 신화와 역사, 철학과 정치, 축제와 종교가 하나의 웅대한 협주음처럼 화합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우리는 1980년대에 되살아 온 <부도지>와 <한단고기>, 그리고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중국의 가부장문명 이전의 마고문화의 문명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이전의 마고문명을 연구해야 할 사람들은 마고문화를 창조하고 지켜온 한국인들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한국인들마저 마고문화와 한국상고사 역사를 잊게 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마고문화의 자료들을 해석할 학문적 도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는 물론 중국대륙과 일본에 즐비한 많은 마고문화의 자료들을 해석하는 일은 21세기 한국인들의 사명입니다. 


        마고문화를 연구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선 민속학적 입장에서 마고문화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마고문화의 입장에서 한국학을 다시 세우는 일이 한국 지성인들의 궁극적인 사명입니다. 또 이미 일부 한국학자들이 시작한대로 중국학과 일본학을 통해서 <부도지>와 <한단고기>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자들이 중국과 일본이 고대 한국인들이 창조하고 수호한 마고문화의 역사에서 파생된 민족국가라는 것을 밝혀낸다면,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더 이상 무서워 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종교, 신화, 문학, 관습, 예술에 녹아있는 마고문화의 광맥을 찾아내고 또 그 보물을 다듬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서구의 기독교 이전의 여신종교학자들의 연구를 참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아직 한국에 널리 소개되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 학자들은 지난 19세기부터 고고학, 신화를 통해서 기독교 이전의 여신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연구해왔습니다. 특히 1970년 이래로 여성중심적 고대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연구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고대여신을 찾는 서구인들은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지금 유럽과 미국,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기독교 이전의 여신종교로 돌아간 남녀의 숫자가 500,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Carol P. Christ와의 대화, 1/08/2005). 이들은 자신들을 이교도(Pagan)이라고 부르거나 마녀(Witch)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인기를 끈 <다빈치코드>라는 소설도 이런 조류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서구의 고대 여신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단지 서구의 학문이 발달했기 때문에 빌려다 쓰자는 말이 아닙니다. <부도지>에 의하면, 마고문화는 그 생성 초기부터 전 세계로 전파됩니다. 앞서서, 마고문화의 고대 한국인들의 사명이 만민들을 마고의 근본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도지>는 황궁의 시기부터 타민족들에게 마고문화의 사신을 보내는 정치적, 종교적 관습을 시작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단국의 시기에는 마고의 문명이 크게 발달하는데 이것을 신시神市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부도지>와 <한단고기>를 종합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문명의 기초가 신시의 문명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선박, 궁궐, 승차의 건축기술은 물론 철학, 천문학, 철학, 과학, 음악, 달력, 수학 등의 학문, 그리고 종교, 의례, 관습, 축제 등의 제도는 물론 도덕과 윤리 등도 신시의 문명에서 이미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소도, 제천, 웅상 등의 관습은 전세계적으로 펴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세계의 신화와 고고학적 연구는 <부도지>와 <한단고기>의 기록을 뒷받침해 줍니다. 신시와 부도의 문명에 대한 설명과 이 고대 한국의 문명이 어떻게 세계의 신화에 드러나 있는지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끝으로 중국 대륙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고대 한국의 마고문화 유적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중국정부에서 용인하고 중국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고구려사 중국편입의 노력이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동북아시아의 영토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영토를 중국의 것으로 얻기 위해서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에 편입시키는 일은 아주 편리한 방편입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서길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한국학자들과 일반인들의 노력으로 수호할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고구려 이전의 한국역사는 어떻게 합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전의 한국역사와 문명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지금 북한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들 전체가 느끼는 위기감은 사실 20세기의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도조선이 무너진 이래로 같은 위기감을 느껴왔습니다. 삼한의 사람들은 물론 가야인,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 발해인들이 절감한 민족적 위기라는 말입니다. 필자는 남북한인 모두 마고문화의 한국역사 안에서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새로 이해할 것을 촉구합니다. 마고문화라는 태토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새로 이해하자는 말입니다. 이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생기는 위기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대처하자고 촉구합니다.


        <한단고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만큼이나 자신의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역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 상고사에 대한 역사과 문명의 강탈이 전세계에 들통나는 날을 무서워할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문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도 아니요, 중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성립 자체가 중국 이전의 마고문화적 한국인들의 통치를 무력으로 뒤업고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두려워할 것입니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의 사건이나 한나라 때 정치적인 목적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사서오경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고전서들이 가짜라고 증명되는 날이 두려울 것입니다.


        가장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역사만 가지로 지금 중국정부가 연구하고 발표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중국대륙에 위치한 고고학적 유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기원전 3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여신중심의 홍산문화가 그 예입니다. 또 중국 대륙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규모가 비슷한 100개 이상의 피라미드가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전 세계학자들이 알고 있지 못합니다. 중국정부로서는 이 유적이 중국의 것이라고 한다면 세계에 알리기를 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돌의 문화는 신석기, 중석기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중국왕조라는 하나라의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중국 이전의 동아시아 문명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 역사와 문명을 가지고 티벳의 피라미드 등을 포함한 고고학적 유적을 설명할 수 없으며, 중국의 종교와 신화를 가지고 동아시아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언어학적, 무속적, 민속문화적 전통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발견된 여신중심의 구석기 시대 유적을 일본의 역사와 신화를 가지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마고문화의 전통을 연구하게 되면 동아시아의 고대역사와 문명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게 강탈당한 영토와 문화를 되찾아 올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가 빼앗긴 영토를 무력으로 되찾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중국,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에 퍼진 고대 마고문화의 후손민족들을 찾아내고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들을 품어 안으면서 새로운 평화적 질서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조작한 한국역사와 동아시아 고대사의 진실을 들을 귀가 있는 세계인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낀 살과 한은 마고문화를 되찾는 날에야 근원적으로 풀어질 것입니다. 그제서야 오랜 세월동안 이그러져 굳어진 한국인들의 얼굴에 미소와 환희, 신명이 되살아 날 것입니다.


                      


맺음말


        우리는 실제의 역사와 기록된 역사의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사가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기록되고 역사기록이 반드시 역사의 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국인들이 쓴 동아시아 고대역사는 <부도지>와 <한단고기>의 역사와 판이하게 다르지 않습니까? 중국의 역사는 마고문화를 창조하고 수호해 온 상고대 한국역사를 부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중국적 민족주의 혹은 팽창주의 사가들은 마땅히 중국이전의 마고문명을 부인해야 했는데, 그래야만 한국의 상고사도 고스란히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고문화와 한국 상고사를 지워버린 후 고대 중국 사가들은 동아시아 역사가 마치 중국 가부장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 조작해 왔습니다.


        역사가 논증될 수 있는 연구에 의해서 하나의 사실로, 다시 말하면 객관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너무 순진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지성인들이 기록한 가짜 역사가 “논증”이 되어서 정사로 인정되고 있지 안습니까? 역사는 항상 그러했듯이 누가, 언제,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쓰여집니다. 필자의 논지는 한국인들이 고대 한국인들의 마고문화의 관점에서 한국역사와 동아시아 고대사를 다시 쓰자는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 역사가 정사가 되는 한, 한국의 고대사와 문명은 말살, 축소, 왜곡, 강탈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역사기록의 힘은 또한 국가 경제력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력을 가지고 일본인들은 지식인들을 생산해냈고, 그 지식인들은 미국과 구미의 대학에서 일본적 관점에서 쓰여진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를 전파해왔습니다. 일본의 기록된 역사는 기원 후 5세기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전부이니, 일본인 학자들은 중국의 고대사를 빌려서 일본이라는 민족국가와 문명의 시작을 설명해 왔습니다. 전지구적으로 파산된 가부장적 국제정치와 외교제도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통해서 “진리”를 만들어낸다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필자가 박사학위를 끝내고 미국대학에서 교직을 찾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일정한 기금을 기부하면 미국에 있는 명문대학에서 종신교수직 자리를 하나 만들 수 있으며 원하는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 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미국과 유럽의 학계로 진입했음은 명백합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은 진실과 경제력 둘 다를 사용해 잃어버린 마고문화의 역사를 되찾고 동아시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지구적 가부장사회 공동체에서 개개인은 민족단위로 국가단위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이라는 민족,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알려져 있는냐에 따라서 평가됩니다.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겉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힘에 의존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국제정치, 국제경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는 개인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나라의 개인들은 쉽게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문화가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은 언제나 부모없는 사람처럼 보호받지 못합니다. 한 민족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느냐에 따라서 그 민족의 정체성이 규명되고 그 민족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자신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민족은 세계에서 당당한 민족이 됩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떤 한국인들이 될 것인가는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되찾아 밝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일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국제 학계에서 한국 인문학이 얼마나 저조하고 비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깊이 한탄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지성인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구미에서 유학을 하고 있지만, 국제학계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인문학의 자리가 얼마나 구차하고 미비한지를 알고 돌아가는 한국인들도 별로 없습니다.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동시대의 한국인들은 한국 역사는 물론 한국의 신화, 한국의 인류학, 한국의 고고학, 한국의 문학, 한국의 종교학, 한국의 여성학을 다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필자가 마고문화의 문맥에서 한국이라고 말할 때 민족주의적 의미로 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필자는 마고문화의 연구가로서 한국인들이 궁극적으로 마고문화를 새로 밝히는 한국 인문학을 세계에 세우게 되는 날 그때 인류의 지성과 도덕이 진일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고문화의 유산을 이어받았던 고대 한국인들이 세세대대에 걸쳐 전하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인류에 대한 사명입니다.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로그인

최신 댓글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127
어제
136
최대
344
전체
75,159


Copyright © 한퓨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