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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김유신(金庾信)설화

송화강 2021-02-07 (일) 20:04 22일전 24  

김유신(金庾信)설화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신라 통일기의 명장 김유신에 관한 설화. 김유신의 일생을 다룬 내용은 ≪삼국사기≫열전(列傳)에 실려 있고, 그 밖에 김유신의 행적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은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김유신조를 비롯하여 ≪파한집≫·≪동경잡기 東京雜記≫·≪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려 있다.
또한, 구전설화는 김유신이 활약하였던 경상북도 경주·월성 일대와 백제 지역이었던 전라북도 지방에 전하고 있다. 전해지고 있는 설화의 내용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① 김유신은 가야 수로왕의 12대 후손이며 금관가야의 구해왕의 증손으로 경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길에서 만나 야합했는데, 숙흘종이 딸을 가두어 두었더니 벼락이 쳐서 감시를 피해 만명이 서현에게로 도망쳐 갔다.
② 서현은 두 개의 별이 내려오는 꿈을 꾸고, 만명은 금빛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탄 동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뒤 잉태하여 20개월 만에 김유신을 낳았다. ③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렸다.
④ 김유신이 17세에 신라를 침공하는 외적을 물리칠 뜻을 품고 홀로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가 빌었더니 산신이 나타나 방술(方術)을 전해 주고는 오색찬란한 빛만 남기고 사라졌다. 18세에 열박산(咽薄山)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니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⑤ 김유신이 35세에 아버지를 따라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치러 가서 혼자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용맹을 떨쳐 승리로 이끌었다. 백제의 계속되는 침공 때문에 출정할 때 자기 집 앞을 그냥 지나가는 의연함을 보여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싸움마다 승리했다.
비담(毗曇)·염종(廉宗) 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큰 별이 떨어져 신라왕이 질 징조라 하자 허수아비를 태워 떨어진 별이 도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여 난을 평정했다. 백제와의 싸움에서 거짓 패하는 척하고 달아나다 백제군을 포위하고 협상하여 품석(品釋) 부부의 유골을 찾았다.
백제 장군 은상(殷相)이 공격해 왔는데, 물새가 동쪽으로 나는 것을 보고 첩자가 올 것이라 점쳐 승리하였다.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즉위하게 하고, 백제를 물리칠 때 연합한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치려 하자 당군과 싸울 굳은 결의를 보여 당나라 군사는 그냥 귀국했다.
고구려와 말갈(靺鞨)이 북한산성을 포위하자 김유신이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리니 하늘에서 큰 별과 뇌성벽력이 떨어져 그에 놀란 적군이 물러났다. 고구려의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당나라 군사에게 적진을 뚫고 군량을 수송하게 했는데, 김유신은 현고잠(懸鼓岑)의 산사에 이르러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니 이번 길에 죽지 않으리라는 계시를 받았다.
거듭되는 백제유민의 반란을 김유신이 꾀를 가르쳐 물리치도록 했고, 고구려 정벌 때에도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천도·인심·지리를 얻어야 승리한다고 하였다. ⑥ 문무왕은 김유신 집안의 3대에 걸친 업적을 칭찬하고 유신에게 태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최고직을 주었다.
⑦ 나라에 요성(妖星)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며, 군복을 입고 병기를 가진 수십 명의 군사가 유신의 집에서 울면서 나가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유신은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예언하였다. 문무왕 13년에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⑧ 김유신의 묘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시조대왕릉(始祖大王陵)에 이르고 티끌이 일어나며 울며 한탄하는 소리가 나자 혜공왕이 두려워 제사를 드리고 사과하였다.
이상과 같이 ① 고귀한 혈통과 부모의 결연, ② 출생, ③ 어린 시절의 시련, ④ 수련 과정, ⑤ 입공 과정, ⑥ 성공, ⑦ 죽음, ⑧ 죽은 후의 이적 등으로 이루어진 ≪삼국사기≫ 열전의 내용은 고대 신화로부터 이어져 오는 ‘영웅의 일생’을 수용하여 일대기 형식을 갖추었다.
또, 김유신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과 아울러 설화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①·⑥·⑦ 외의 다른 부분은 다른 문헌이나 구전설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대조할 필요가 있다.
②의 내용은 ≪동경잡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태몽 대신에 김유신이 칠요(七曜 : 日·月·火·水·木·金·土의 主星)의 정기를 타고나서 등에 칠성(七星)의 무늬가 있다고 했다. 구전설화는 ≪삼국유사≫와 비슷하다.
≪삼국사기≫에서는 천상계 인물이 하강했다고 설정한 반면에, ≪삼국유사≫나 구전설화는 비범한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③의 내용은 ≪삼국사기≫와 구전설화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에서는 아무런 고난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데 비해, 구전설화에서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김유신이 성 밖에서 고생하며 자랐다고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화랑이 된 뒤에 방술을 배웠다고 한 반면에, ≪삼국유사≫에서는 “검술을 배운 뒤에 화랑이 되었다(修劍得術爲國仙).”고 하였고, 구전설화에서는 홀로 활쏘기를 연습하여 시합에서 일등을 하여 화랑이 되었다고 했다.
결국 구전설화나 ≪삼국유사≫는 김유신이 화랑이 되어 계급적 상승을 이루기까지는 일정한 고난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혈통 중심으로 구성된 신라 사회에서 가야계 출신으로서 계층적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김유신의 위치를 나름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나 구전설화 사이에 거리가 있는 이유는 한쪽이 김유신을 귀족적 영웅으로 수용하려 한 데 비해, 다른 쪽에서는 민중적 영웅으로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④에 나타나는 장차 중요한 과업을 수행해야 할 주인공을 호국신이 도왔다는 내용을 ≪삼국사기≫는 야단스럽게 그렸는데, ≪삼국유사≫는 비슷한 의미를 아주 다르게 구현했다.
≪삼국유사≫에서는 김유신이 국선이 되어 백석(白石)이라는 자와 같이 고구려를 정탐하러 가는데, 여자로 변한 세 호국산신이 나타나 동행하다가 백석이 고구려 첩자임을 알려 주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백석을 문초하여 김유신은 고구려의 복서사(卜筮士) 추남(楸南)이 억울하게 죽어 복수하기 위해 환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구전설화에서는 김유신이 집을 떠나 산에 들어가 산신령에게 검술을 배우고 용마를 얻었다고 했다. ≪삼국사기≫와 구전설화는 산신이 남신인 점은 같지만, 구전설화에서는 간절한 기원이 없어도 산신이 나타난 것은 ≪삼국사기≫와 다르다.
≪삼국유사≫에서 나타난 산신은 여신이며 친근하고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반면, ≪삼국사기≫에 나타난 산신은 위압적인 권능을 지니고 있으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득한 존재이다.
그래서 ≪삼국사기≫는 도교적 전승에 의거한 중국 고전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하고 있고, ≪삼국유사≫는 이른 시기의 신관(神觀)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전설화는 민중적 영웅의 모습에다 문헌설화에 나타난 요소를 덧붙인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⑤의 내용은 ≪삼국사기≫가 가장 자세해서 어느 자료보다도 통일을 위해 겪어야 하는 시련과 투쟁 의지가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김유신의 면모는 하늘과 통하는 신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구전설화에서는 하늘의 도움 대신 도술적 능력이 강조되고 있는데, 소정방(蘇定方)을 도술로 물리쳤다는 경우는 중국이나 일본의 첩자를 도술로 물리쳤다는 후대의 이인설화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또한 구전설화에서도 지혜가 강조되었는데, ≪삼국사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예사롭지 않은 지혜가 아니라 도망가는 백제 장수가 목이 말라 물 마시는 사이에 잡았다는 것과 같은 예사롭기만 한 능력에 불과하다.
구전설화에서는 김유신이 패배했다는 경우도 있어서 흥미로운데, 반란군이 김유신의 수련하던 석굴을 점령하여 할 수 없이 비켜 주었다고 해서 김유신을 인정하려는 상층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수긍하지만은 않는 하층의 생각을 나타내 준다. 이러한 점은 이름 없는 백성이 김유신을 놀라게 했다는
〈죽통미녀설화 竹筒美女說話〉나 〈노옹화구설화 老翁化狗說話〉와도 상통한다. ⑧의 내용은 ≪삼국유사≫ 기이 제1 미추왕과 죽엽군(竹葉軍)에 관한 기사에 더욱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후대의 지리지(地理志)나 구전설화에만 전하는 설화도 상당수에 이른다.
김유신이 자기가 좋아하던 천관사(天官寺)에 사는 기생에게 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말을 죽였다는 이야기, 까치로 변신하여 첩자로 온 백제 공주를 검으로 잡아 장사 지내 주어 그곳을 작성(鵲城)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신검으로 바위를 쳤더니 바위가 갈라져 그 산을 단석산(斷石山)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삼국사기≫는 고대의 신화적 틀을 수용하면서도 중국 고전의 서술을 규범으로 삼고자 한 흔적이 나타나며, 중세적 질서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개작하려 하고 귀족적 영웅의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완전한 일대기의 형식을 갖추었다.
≪삼국유사≫나 구전설화는 고대의 신화적·민속적 유산을 더욱 직접적으로 잇고 민중적 영웅의 모습으로 바꾸고자 한 시도가 엿보이나,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로 머물거나 지명에 얽힌 전설처럼 변하고 말았다.
≪삼국사기≫ 열전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양상이 후대의 영웅소설에 거듭 나타나고, 이 열전을 바탕으로 소설로 꾸민 〈각간실기 角干實記〉 같은 작품도 나왔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破閑集, 新增東國輿地勝覽, 東京雜記, 韓國民間傳說集(崔常壽, 通文館, 1958),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角干實記攷(朴斗抱, 東洋文化 12, 嶺南大學校東洋文化硏究所, 1971), 三國史記所載 金庾信說話의 硏究(金鎭英, 국어교육 21,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73), 巫俗的英雄考-金庾信傳을 中心으로-(金烈圭, 震檀學報 43, 1977), 人物傳說의 構造와 思想背景에 關한 小考(金惠敬, 梨花女子大學校大學院, 1983), 삼국시대 설화의 문학적 해석(조동일, 傳統과 思想 Ⅰ,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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